회복에만 900년 걸린다던 체르노빌.. 지금은?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에서 두 차례의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의 예측은 암울했습니다. "이 땅은 수백 년, 혹은 900년 동안 생명이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그곳은 정말 죽음의 땅으로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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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9, 2026
회복에만 900년 걸린다던 체르노빌.. 지금은?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에서 두 차례의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며 하늘로 치솟은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 그 이름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체르노빌'의 시작이었습니다.
사고 직후, 발전소 인근 도시 프리피야트의 5만 주민들은 36시간 만에 대피해야 했습니다. "2~3일이면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집을 나선 사람들은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반경 30km, 약 4,200㎢에 달하는 지역이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총 3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텅 빈 아파트, 멈춰버린 놀이공원의 관람차, 교실에 흩어진 교과서들. 프리피야트는 그날의 시간에 그대로 갇혀버린 도시가 되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의 예측은 암울했습니다. "이 땅은 수백 년, 혹은 900년 동안 생명이 살 수 없을 것이다." 세계는 이곳을 '죽음의 땅',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로 불렀습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 생명이 다시 자라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그곳은 정말 죽음의 땅으로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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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뒤엎은 발견

 
2015년, 영국 포츠머스대학교의 짐 스미스 교수 연구팀이 체르노빌 출입금지 구역에 대한 대규모 야생동물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항공 조사와 수백 대의 카메라 트랩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죽음의 땅이라 불렸던 그곳에서, 생명은 폭발적으로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멧돼지, 붉은사슴, 엘크, 노루 등 대형 초식동물의 개체 수가 사고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의 개체 수였습니다. 체르노빌 출입금지 구역 내 늑대의 밀도는 방사능 오염이 없는 인근 자연보호구역과 비교했을 때 무려 7배나 높았습니다.
 
유럽에서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던 유럽 들소가 이곳에서 무리를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스라소니와 유라시아 수달이 돌아왔고, 200여 종이 넘는 조류가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1998년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프셰발스키 말이 방사되었는데, 현재는 150마리가 넘는 개체가 자유롭게 초원을 누비고 있습니다.
 
버려진 아파트 단지 사이를 유유히 걷는 늑대. 녹슨 관람차 아래를 지나는 야생마. 무너져가는 학교 건물 옆에서 풀을 뜯는 들소. 이곳에서 포착된 이미지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체르노빌'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복원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떠난 자리를 자연이 스스로 채워 넣었을 뿐입니다. '죽음의 땅'이라 불렸던 곳은 어느새 유럽에서 가장 풍요로운 야생의 낙원 중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숲이 스스로 돌아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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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보다 무서웠던 것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방사능이 동물들에게 좋았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연구자들은 체르노빌 인근에 서식하는 동물들에게서 분명한 피해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일부 새들에게서 종양과 백내장이 관찰되었고, 특정 종의 수명이 단축되기도 했습니다. 고농도 오염 지역에 사는 동물일수록 산화 스트레스 수치가 높았고, 돌연변이 발생률도 증가했습니다. 개체 단위에서 보면, 방사능은 분명히 해로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개별 동물에게는 피해가 있었지만, 전체 개체군의 수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역설이 가능했을까요?
 
연구진은 오랜 조사 끝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간 활동이 사라진 효과가 방사능의 부정적 영향보다 훨씬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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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이 멈췄습니다. 농경지 확장을 위한 서식지 파괴가 중단되었습니다. 도로가 더 이상 건설되지 않았고, 자동차에 치이는 동물도 없어졌습니다. 벌목이 멈추자 숲이 다시 자라났고, 공장이 가동을 멈추자 강물이 맑아졌습니다.
 
인간에게는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었습니다.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수천 명이 방사능 관련 질환으로 고통받았습니다. 그 비극의 무게는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야생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체르노빌 출입금지 구역은 의도치 않게 거대한 자연보호구역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의 부산물로, 4,200㎢에 달하는 땅이 40년 가까이 온전히 자연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자연에게 가장 해로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자연을 '보호'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방해'하고 있는 걸까요?
 
체르노빌의 숲은 말합니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연약하지 않았다고. 인간이 물러서자, 자연은 스스로 회복하기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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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자연의 힘

 
체르노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DMZ, 비무장지대를 생각해봅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이 폭 4km의 땅은 한반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생태계를 품고 있습니다. 두루미, 재두루미, 흑고니, 저어새 같은 멸종위기 철새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반달가슴곰과 산양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전쟁의 상흔 위에서, 자연은 조용히 제 영역을 회복해왔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야생 멧돼지, 일본원숭이, 너구리의 개체 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 곳곳에서 야생동물들의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전 세계 도시에서 놀라운 장면들이 포착되었습니다. 베네치아 운하에 물고기와 백조가 돌아왔고, 인도의 도시에서는 공작과 사슴이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칠레 산티아고 도심에 퓨마가 나타났고, 일본의 나라 공원에서는 사슴들이 평소보다 더 멀리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불과 몇 주 만에 일어난 변화였습니다.
 
이 모든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멈추자, 자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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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은 연약해서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는 서사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환경 캠페인은 종종 "지구가 아프다", "자연이 죽어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물론 그 우려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종 다양성 감소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체르노빌이 보여준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회복하는 강인한 시스템이라는 것. 어쩌면 자연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보호'가 아니라 '간섭을 줄이는 것'일 수 있다는 것.
 
숲을 걸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입니다. 낙엽은 땅으로 떨어져 썩어 거름이 됩니다. 쓰러진 나무는 수십 종의 곤충과 균류, 작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결국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터전이 됩니다. 죽은 연어의 몸은 강에서 숲으로 영양분을 운반하고, 그 숲은 다시 강을 맑게 유지합니다.
 
자연에는 '쓰레기'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환합니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체르노빌의 숲도 같은 원리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낙엽이 쌓이고, 그 위에 새로운 낙엽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며 숲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계획도, 그 누구의 관리도 없이. 자연은 그저 자연의 방식대로 순환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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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라는 이름의 실천

 
체르노빌이 주는 깨달음은 조금 불편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구한다'는 생각 자체가 어쩌면 오만일 수 있다는 것. 자연은 인간이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45억 년을 버텨왔습니다. 빙하기도, 대멸종도, 소행성 충돌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매번 스스로를 회복해왔습니다.
 
어쩌면 자연이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도움'이 아니라 그저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에 있습니다. 자연의 순환 체계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 수백 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생태계를 교란하는 화학물질, 지구의 균형을 흔드는 온실가스. 이것들은 자연이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진정한 실천은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쓰고 버리는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봅니다. 배수구로 흘러간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쓰레기통에 버린 것들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것들이 자연의 순환 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순환을 막는 장애물이 되는 것인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 대신,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방해하지 않는다"고 말해봅니다. "자연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말 대신, "자연의 방식에서 배운다"고 말해봅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은 신뢰입니다. 자연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 우리가 할 일은 그 치유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겸손한 인식.
 
체르노빌의 숲이 보여준 것처럼, 자연은 우리가 살려야 할 환자가 아닙니다. 인간이 멈추면, 자연은 스스로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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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에게

 
우리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팔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믿는 것,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자연은 강합니다. 그 강인함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완벽한 환경주의자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일회용품을 완전히 끊지 못해도,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도, 플라스틱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어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만,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면. 연약해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순환하고 회복하는 강인한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가 할 일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체르노빌의 숲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자연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From Forest, For Future
The Cycle of Nature, Our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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