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게 배우는 깨끗함의 정의
가을이 깊어지면 숲은 낙엽으로 뒤덮입니다. 이듬해 봄, 그 많던 낙엽이 사라져 있습니다. 아무도 치우지 않았는데, 숲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합니다. 낙엽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Jan 15, 2026
가을이 깊어지면 숲은 낙엽으로 뒤덮입니다. 노랗고 붉은 잎들이 땅 위에 켜켜이 쌓여,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발끝에서 올라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이듬해 봄, 그 많던 낙엽이 사라져 있습니다. 아무도 치우지 않았는데, 숲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합니다. 낙엽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누군가 쓸어 담아 버린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방식의 '치움'이 있는 걸까요.
수억 년이 빚어낸 것
흙이 처음부터 흙이었던 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은, 수억 년의 시간이 천천히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이야기는 암석에서 시작됩니다. 단단하고 차가운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바위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리쬐었습니다.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바위의 틈을 벌렸고, 빗물은 그 틈 사이로 스며들어 얼고 녹기를 반복했습니다. 수천 년,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바위는 조금씩 부서져 갔습니다. 거대한 덩어리가 작은 조각이 되고, 작은 조각이 모래알이 되고, 모래알이 더 고운 입자가 되었습니다.
흙의 가장 오래된 뼈대입니다.

하지만 부서진 암석만으로는 흙이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이 개입합니다. 이끼와 지의류가 바위 표면에 자리 잡고, 죽어서 유기물을 남겼습니다. 작은 벌레들이 그 유기물을 먹고, 배설하고, 또 죽었습니다. 식물의 뿌리가 땅속으로 파고들어 양분을 흡수하고, 그 식물이 죽으면 다시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과정이 수백만 년 동안 반복되었습니다. 바위의 조각과 생명의 흔적이 섞이고, 뒤엉키고, 숙성되어 마침내 흙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탄생하는 거죠.
흙 1센티미터가 만들어지는 데는 대략 100년에서 1,000년이 걸린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밟고 지나가는 이 땅 한 뼘에는, 인간의 역사보다 긴 시간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흙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흙은 순환의 결과물입니다. 바위가 부서지고, 생명이 살다 죽고,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진 것. 순환이 순환을 낳아 만들어진 존재가 바로 흙입니다.

흙은 거부하지 않는다
흙의 가장 특별한 점을 꼽으라면 '받아들임’을 꼽겠습니다.
흙은 숲에서 떨어진 낙엽을 받아들입니다. 동물이 죽으면 흙은 그 시체를 받아들입니다. 동물들의 배설물도, 썩어가는 열매도, 꺾인 나뭇가지도 흙은 거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더럽다', '지저분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흙은 밀어내지 않습니다. 고스란히 품습니다.
그런데 흙은 단순히 쌓아두기만 하지 않습니다. 흙 1그램 안에는 수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작은 존재들은 쉬지 않고 일합니다. 낙엽을 분해하고, 유기물을 잘게 쪼개고, 복잡한 물질을 단순한 양분으로 바꿉니다. 박테리아, 곰팡이, 원생동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떨어진 것들을 새로운 무언가로 변환시킵니다.
흙의 깨끗함은 '밀어냄'이 아닙니다.
'순환시킴'입니다.
받아들이고, 분해하고, 변환하고, 다시 내어주는 것. 이것이 흙이 수억 년 동안 해온 일입니다. 숲 바닥이 낙엽으로 산더미처럼 쌓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흙은 떨어진 모든 것을 받아 안고, 그것을 다시 생명의 재료로 바꾸어 돌려보냅니다.
우리는 보통 깨끗함을 '없음'과 연결짓습니다. 먼지가 없고, 얼룩이 없고, 냄새가 없는 상태를 깨끗하다고 부릅니다.
하지만 흙은 다른 방식으로 깨끗합니다. 흙의 깨끗함에는 '비움'이 없습니다. 대신 '흐름'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들어오고, 변하고, 나가는 끊임없는 흐름. 그 흐름이 멈추지 않는 한, 흙은 언제나 깨끗합니다.

흙은 어떻게 깨끗해지는가
흙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봅시다.
낙엽 한 장이 땅에 떨어집니다. 처음에는 그 형태가 뚜렷합니다. 색깔도, 질감도, 잎맥의 무늬도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시작됩니다. 먼저 곰팡이가 낙엽 표면에 자리 잡습니다. 균사가 잎 조직 안으로 파고들어 셀룰로오스를 분해합니다. 낙엽은 점점 물러지고, 색이 어두워집니다.
그 다음, 작은 토양동물들이 등장합니다. 톡토기, 응애, 지렁이 같은 생물들이 물러진 낙엽을 갉아 먹습니다. 이들은 낙엽을 더 작은 조각으로 부수고, 자신의 몸을 통과시켜 배설합니다. 이 배설물은 미생물이 활동하기 더 좋은 형태가 됩니다. 박테리아들이 달라붙어 유기물을 더욱 단순한 화합물로 쪼갭니다.
최종적으로 낙엽은 질소, 인, 칼륨 같은 무기 양분이 됩니다. 이 양분은 흙 속에 녹아들고, 식물의 뿌리가 이를 흡수합니다. 양분을 먹고 자란 식물은 잎을 틔우고, 그 잎은 언젠가 다시 떨어져 낙엽이 됩니다. 순환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이 과정에서 '쓰레기'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없습니다.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양분입니다. 동물의 배설물은 오물이 아니라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자원입니다. 죽음조차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모든 것이 다음 단계의 재료가 됩니다.
흙의 깨끗함은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흔적을 생명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흙은 끝을 시작으로 번역하는 존재입니다. 수억 년 동안, 지금 이 순간에도, 흙은 묵묵히 그 번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던 깨끗함
이제, 시선을 우리에게로 돌려보겠습니다.
우리는 깨끗함을 어떻게 정의해왔을까요. 대부분의 경우, 깨끗함은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지가 보이면 털어내고, 얼룩이 보이면 닦아내고, 냄새가 나면 뿌려서 덮습니다. 싱크대에 고인 물은 배수구로 흘려보내고, 바닥의 오물은 쓸어서 쓰레기통에 넣습니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우리는 '깨끗해졌다'고 느낍니다.
배수구로 흘려보낸 물은 어디로 갈까요. 쓰레기통에 넣은 것들은 어디로 갈까요. 우리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앞에서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사라진 것은 없습니다. 배수구로 간 물은 하수관을 타고 흘러, 처리장을 거쳐, 강으로, 바다로 향합니다. 쓰레기통의 내용물은 트럭에 실려, 매립지에 묻히거나 소각장에서 태워집니다. 눈앞에서 사라진 것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해 있습니다.
흙은 받아들인 것을 순환시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흘려보내고 버린 것들 중 상당수는 순환하지 못합니다. 분해되지 않는 물질은 그 자리에 머무릅니다. 흙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은 쌓이기만 합니다. 바다에 떠다니는 미세한 조각들, 땅속에 묻혀 수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들, 물고기의 몸속에서 발견되는 낯선 성분들. 이것들은 순환의 고리 바깥에 놓인 것들입니다.
우리의 깨끗함은 진짜 깨끗함일까요,
아니면 미루어둔 것일까요.
눈앞에서 치운 것과 진짜로 사라진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흙은 그 차이를 모릅니다. 흙에게 깨끗함은 언제나 '순환의 완성'을 의미했으니까요.

과정까지 깨끗하다는 것
흙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깨끗함의 범위'일 겁니다.
흙의 깨끗함은 특정 순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순간만 깨끗한 게 아닙니다. 분해되는 과정도, 양분으로 바뀌는 과정도, 다시 뿌리에 흡수되는 과정도 모두 깨끗함의 일부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아니 끝이 다시 시작이 되는 그 전체가 깨끗함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깨끗함은 단순히 '닦이는 순간'에 그치지 않습니다. 닦아낸 것이 어디로 가는지, 흘려보낸 것이 무엇이 되는지, 그 이후의 여정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완전한 깨끗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정까지 깨끗한 것.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모든 단계가 깨끗한 것.
자연은 이미 그렇게 작동해왔습니다.
숲에서 흘러내린 빗물은 땅을 통과하며 정화되어 다시 깨끗한 지하수가 됩니다. 강에 떨어진 유기물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강 생태계의 일부가 됩니다. 어떤 것도 순환 밖으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고, 변환되고, 다시 돌아갑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그런 순환이 가능할까요. 배수구로 흘러간 것이 강에 도착했을 때, 강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쓰고 버린 것이 흙에 닿았을 때, 흙이 그것을 분해하고 순환시킬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흙이 가르쳐준 깨끗함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자연의 성질과 흐름을 이해하고, 그 시간표에 맞춰 돌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깨끗함의 새로운 정의일지도 모릅니다.

낙엽은 어디로 갔을까
마지막으로 다시 묻습니다.
‘가을에 쌓였던 낙엽은 어디로 갔을까요?’
낙엽은 버려진 게 아닙니다. 치워진 게 아닙니다. 흙이 받아들였습니다. 수억 마리의 미생물이 분해했습니다. 작은 생물들이 갉아먹고, 배설하고, 또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낙엽이었던 것은 양분이 되어 흙에 스며들었고, 그 양분은 나무의 뿌리를 타고 올라가 새 잎이 되었습니다. 낙엽은 사라진 게 아니라, 순환의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흙은 수억 년 동안 이 일을 해왔습니다. 받아들이고, 품고, 바꾸고, 돌려보내는 일. 흙에게 깨끗함은 결코 '없앰'이 아니었습니다. '이어감'이었습니다. 끝나는 것이 없고, 버려지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음으로 연결되는 상태. 그것이 흙이 말하는 깨끗함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눈앞에서 치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치워진 것이 어디로 가는지까지 생각하는 것. 내가 흘려보낸 것이 강에 도착했을 때 강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가 버린 것이 흙에 닿았을 때 흙이 품을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 그것이 흙에게서 배우는 깨끗함일 겁니다.
오늘 당신이 흘려보낸 것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그것은 언젠가 흙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요. 흙이 낙엽을 받아들이듯, 자연이 기꺼이 품을 수 있는 것인가요.
숲은 오늘도 낙엽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낙엽은 내년 봄, 새 잎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순환은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의 깨끗함도 그 순환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흙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From Forest, For Future
The Cycle of Nature, Our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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