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이라는 환상의 본질
세제 코너에만 가도 '에코', '그린', '내추럴',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가 빼곡합니다. 장바구니에는 어느새 '친환경 인증' 마크가 붙은 것들이 하나둘 담깁니다.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이 선택이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Feb 11, 2026
세제 코너에만 가도 '에코', '그린', '내추럴',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가 빼곡합니다. 샴푸를 고르다 보면 '자연유래 95%'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고, 바로 옆에는 '식물성 계면활성제'라고 적힌 제품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장바구니에는 어느새 '친환경 인증' 마크가 붙은 것들이 하나둘 담깁니다. 요즘은 커피 한 잔을 사도 '탄소중립 원두'라는 태그가 따라붙고, 옷을 한 벌 사도 '리사이클 원단'이라는 설명이 꼬리표처럼 달려 나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비가 '지속가능'이라는 단어 위에 올라서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듯이.
좋은 선택과 그 이면에 대한 질문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합니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한 쪽을 고르고 싶고, 가능하다면 나의 소비가 어딘가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겼으면 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이 선택이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내가 고른 이 제품은 진짜 '지속가능한' 건가,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건가? 이 질문이 떠올랐다면,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건강한 의심입니다.
현재 전 세계 199개국에 456개의 에코 라벨이 존재하고(European Commission), 소비자 62%가 기업의 환경 주장을 의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33%였던 수치가 두 배 가까이 뛴 거죠.(Capgemini Research Institute, 2024)
의심하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닙니다.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늘어난 겁니다.
저희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 본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말과 행동 사이, 65%의 간극
소비자의 65%가 "지속가능한 브랜드의 제품을 사고 싶다"고 답합니다. 설문지 앞에서는 대부분이 환경을 생각하는 쪽에 손을 듭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갑을 여는 비율은 26%에 그칩니다(Harvard Business Review). 마음과 행동 사이에 39%포인트의 빈 공간이 존재하는 셈.
연구자들은 이걸 'Say-Do Gap'이라 부릅니다. 직역하면 '말과 실천 사이의 빈틈'입니다.
이 빈틈은 특정 나라들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매년 실시하는 녹색소비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소비자의 환경 실천 점수가 2019년 62.1점에서 2023년 57.1점으로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해마다 높아지는데, 실제 행동 점수는 떨어지고 있는 겁니다.
같은 조사에서 친환경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65.8%로, 전년보다 10%포인트나 감소했습니다. 이 수치는 201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들의 의지가 약해서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McKinsey의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지속가능 제품에 15% 이상 프리미엄이 붙는 순간 구매 의향은 40%나 떨어진다고 전해집니다. 마음은 '사고 싶다'인데, 가격표를 보면 손이 멈추는 것.
여기에 선택지의 불투명함까지 더해집니다. 456개의 에코 라벨 사이에서 어떤 게 신뢰할 만한 인증이고 어떤 게 기업의 자체 표기인지 구분할 기준이 모호하니, 결국 고민 끝에 익숙한 것을 집어 드는 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도구가 부족한 상황인 거죠. 구매하지 않는 소비자를 탓하기 전에, 왜 구매 결정이 이토록 어려운지를 먼저 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국 소비자의 90.5%가 환경 이슈에 관심이 있다고 답하고, 84.8%가 친환경 제품에 관심을 보입니다. 다만 그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가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이 아직 풀지 못한 숙제에 가깝습니다.

친환경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것들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는 단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기업이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왜곡된 친환경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린(green)'에 '세탁(washing)'을 붙인 조어인데, 실체 없는 이미지를 깨끗하게 포장한다는 의미입니다,
수치상 줄어든 그린워싱.. 실상은?
2024년, 글로벌 리스크 분석 기관 RepRisk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그린워싱 적발 건수 자체는 전년 대비 12% 줄었습니다.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인 건데, 언뜻 좋아진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고의적이고 위험도가 높은 사례, 그러니까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소비자를 기만한 경우는 오히려 30% 급증했습니다. 가벼운 위반은 줄었는데, 악질적인 사례가 크게 늘어난 겁니다.
더 눈에 띄는 건 반복 구조입니다. 2022~2023년에 적발된 기업 중 30%가 2024년에도 다시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일종의 패턴입니다. 제재를 받고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에 350억 달러, 호주 Vanguard의 ESG 펀드 허위 표기에 1,290만 달러, 독일 DWS의 ESG 투자 과장 표기에 2,500만 달러. 제재의 규모도 커지고 있지만, 문제가 근절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45%는 그린워싱의 기준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61%는 전담 대응팀조차 갖추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기준을 모르는데 기준을 지킬 수 있을 리 없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특정 기업을 지목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에코', '내추럴', '그린'이라는 수식어가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유통되는 시장의 구조를 들여다 보는 분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건 소수의 악의적인 기업 문제라기보다, 기준이 불분명한 시스템 안에서 누구나 의도치 않게 빠질 수 있는 함정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이 구조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성실하게 노력하는 기업과, 이름만 빌려 쓰는 기업이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소비자의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우리가 '지속가능성'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
구조의 문제를 들여다봤으니, 이번에는 시선을 우리 ‘사람’에게로 돌려보겠습니다.
사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가 일상의 유행어가 되면서, 우리가 그 뜻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에도 빈틈이 생겼습니다. 아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대표적인 착각 3가지입니다.
1.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게 곧 지속가능성이다?
가장 흔하고, 가장 빠지기 쉬운 착각입니다. 비건 가죽 가방, 친환경 신소재 운동화,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든 텀블러까지. 이런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 우리는 좋은 선택을 했다고 느낍니다. 물론 소재의 전환은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가지를 간과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 해도, 물건을 새로 만들고 운반하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탄소는 반드시 배출된다는 것.
가장 지속가능한 물건은 이미 곁에 있는 걸 더 길게, 오래 쓰는 실천입니다. 혹은 하나를 사더라도 10년, 20년을 함께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고르는 걸 의미하죠. '그린 라벨이 붙은 새 제품'을 반복해서 소비하는 것보다, 하나를 수선하고 관리하며 오래 쓰는 쪽이 본질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소비의 빈도’를 줄이는 것.
이 노력이 제품이나 소재를 바꾸는 것보다 늘 앞서야 한다는 걸 기억하시길.
2. 지속가능성은 '환경'에 대한 이슈이다?
지속가능성을 환경 보호와 같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반은 맞지만, 나머지 절반이 빠져 있어요. 본래 지속가능성의 정의에는 환경(Environment)뿐 아니라 사회(Social)와 지배구조(Governance), 세 축의 균형이 포함됩니다.(ESG)
천연 소재를 사용했더라도 그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가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건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친환경 원료를 쓰더라도 기업이 적자에 허덕여 다음 해를 넘기기 어렵다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한쪽 축만 세워놓고 나머지를 외면하면 균형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도 착취당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인가." 환경이라는 한 단어 너머로 이 질문까지 함께 던져야 전체 그림이 보입니다.

3. 친환경 제품, 서비스는 불편하다?
"무조건 안 쓰고 아껴야 한다"는 강박.
"나 하나 참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자괴감.
이 두 감정 사이에서 지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속가능성은 '참기'가 아닙니다.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희생과 불편함만을 요구하는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체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씻기 힘든 재활용품을 억지로 씻고, 불편한 대안을 억지로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피로감만 쌓이는 모델은 결국 이탈로 이어집니다.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취향에 맞는 좋은 것을 골라서 관리하며 애착을 갖는 과정. 그 안에서 효능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그쪽이 진짜 오래 이어질 수 있는 방식입니다.
좋은 물건 하나를 고르고, 그것을 아끼며 쓰는 경험이 쌓일 때, 그 선택은 의무가 아니라 취향이 됩니다. 취향은 강박보다 훨씬 오래갑니다. '순환(Cycle)'이라는 단어가 '참기(Less)'보다 정확한 이유가 여기에 있죠.
'지속가능성', 그 단어 자체를 의심해야 할 때
이 지점에서 시야를 조금 넓혀보겠습니다.
UN이 2015년에 발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이루어진 인류 공동의 약속이었습니다. 빈곤 퇴치, 기후 행동, 깨끗한 에너지, 책임 있는 소비와 생산.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방향이었죠.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2024년, UN 자체 보고서가 전하는 현실은 이렇습니다. 169개 세부목표 중 정상 궤도에 있는 것은 17%에 불과합니다. 3분의 1은 진전이 멈추었거나 오히려 후퇴했습니다.
학계에서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SDGs가 지구 생태계의 물리적 한계보다 경제 성장을 우선에 놓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표현이 과연 양립 가능한 것인지, 성장을 전제로 한 지속가능성이 진정한 의미의 지속가능성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Nature Sustainability를 비롯한 여러 학술 저널에서는, 현재의 프레임이 근본적 전환 대신 기존 체제 안에서의 최적화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중입니다. 쉽게 말하면, 집의 기둥이 기울어져 있는데 벽지만 새로 바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환경사회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비유가 하나 있습니다.
욕조에 물이 넘치고 있을 때를 떠올려 보는 것.
개인의 실천은 컵으로 물을 퍼내는 것에 가깝고, 시스템의 전환은 수도꼭지를 잠그는 것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컵질이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수도꼭지가 열려 있는 한 컵만으로는 물이 줄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자는 이야기죠.
한편으로는 '그린허싱(Greenhushing)'이라는 새로운 현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의미 있는 환경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이, 그린워싱 논란에 휩쓸릴까 봐 그 사실을 오히려 축소 발표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South Pole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상위 100대 기업 중 58%가 이에 해당합니다. 과장하는 곳의 목소리는 커지고, 실천하는 곳은 입을 다무는 역설.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엇이 진짜인지 판별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진심과 포장이 같은 언어를 쓰고, 실천과 침묵이 같은 결과를 낳는 기이한 상황입니다.
이쯤 되면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걸 판단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이 괜히 무겁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습니다.
시스템의 문제, 우리 안의 착각, 개념 자체의 한계. 전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희도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코그링이 제안하고 싶은 건 거창한 답이 아니라,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는 것입니다. 같은 풍경도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듯, 질문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집니다.
1.
"이 제품은 친환경인가?"라고 묻는 대신, "이것은 쓰인 뒤에 어디로 돌아가는가?"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라벨에 적힌 수식어가 아니라, 사용 이후의 과정을 따라가 보는 시선입니다. 제품이 선반에 놓이기까지의 이야기만큼, 쓰이고 난 뒤의 여정도 중요하니까요.
2.
"나는 충분히 실천하고 있는가?"라고 자책하는 대신, "이 구조는 나의 실천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가?"라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의지를 탓하기 전에, 시스템의 설계를 먼저 보는 시선입니다. 실천이 어려운 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천하기 어렵게 설계된 환경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3.
"참아야 하니까"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대신, "이 선택은 나에게 즐거움과 효능감을 함께 주고 있는가?"라고 물어볼 수 있어요. 희생의 크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동기를 보는 시선입니다. 오래 이어지는 습관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숲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낙엽이 거름이 되고, 물이 땅을 거쳐 정화되는 것처럼, 각자의 역할이 무리 없이 이어지는 흐름 안에서 스스로를 유지합니다. 우리의 선택도 비슷한 결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과정을 추적할 수 있고,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선택. 그것이 화려한 구호보다 먼저일 수 있습니다.

질문이 바뀌면 선택이 바뀌고 그렇게, 세상이 달라집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이 단어는 답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단어 앞에서 잠깐 멈춰 서서, "이게 정말인가?"라고 한 번 더 물어본 오늘의 시간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겁니다. 답을 다 갖고 있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질문의 방향이 달라지면, 우리가 닿는 곳도 조금씩 달라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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