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는 왜 늘 좋은 향이 날까? (피톤치드의 비밀)

상쾌한 향. 촉촉한 흙내음. 어딘가 시원하고 깨끗하다는 느낌. 악취는커녕, 도시에서 지친 폐가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은 경험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톤치드'라고 부르며, "숲이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런데, 썩어가는 것들로 가득한 숲이 왜 늘 깨끗한 향을 품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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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1, 2026
숲에서는 왜 늘 좋은 향이 날까? (피톤치드의 비밀)
숲에는 냄새가 나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숲 바닥에는 동물들의 사체가 있습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은 쉼 없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새와 짐승들의 배설물이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도시의 골목 한 귀퉁이에 음식물 쓰레기가 며칠만 방치되어도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는데, 숲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유기물이 매일 쏟아집니다.
그런데 숲에 들어서면 우리가 맡는 것은 무엇인가요?
상쾌한 향. 촉촉한 흙내음. 어딘가 시원하고 깨끗하다는 느낌. 악취는커녕, 도시에서 지친 폐가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은 경험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피톤치드'라고 부르며, "숲이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까요?
썩어가는 것들로 가득한 숲이 왜 늘 깨끗한 향을 품고 있는 걸까요? 그 모든 것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요? 그리고 우리가 '선물'이라고 부르는 이 향기는 정말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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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 정말 더러움의 신호일까?

 
먼저, 악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냄새가 나면 "더럽다"고 여깁니다. 배수구에서 냄새가 나면 배수구가 더러운 것이고, 냉장고에서 냄새가 나면 냉장고 안에 무언가 상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악취는 "더러움" 그 자체의 신호가 아닙니다.
 
악취는 "순환이 멈췄다"는 신호입니다.
 
음식물이 썩을 때 냄새가 나는 이유를 떠올려보세요. 유기물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하고, 그 가스가 우리 코에 닿으면 불쾌한 냄새로 인식됩니다. 그런데 왜 숲에서는 똑같이 낙엽이 썩고, 사체가 분해되는데도 그런 냄새가 나지 않을까요?
 
이유는 '속도'에 있습니다.
 
숲에서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순간, 분해가 시작됩니다. 낙엽 한 장이 땅에 닿으면 수십 종의 미생물이 달려듭니다. 곰팡이가 섬유질을 분해하고, 박테리아가 당분을 먹어치웁니다. 지렁이와 딱정벌레 같은 곤충들이 잎을 잘게 부수어 미생물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동물의 사체가 있으면 독수리나 까마귀 같은 청소부 새들이 먼저 찾아오고, 남은 것은 파리 유충과 딱정벌레가 처리합니다. 뼈까지도 결국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토양의 일부가 됩니다.
 
모든 과정이 쉼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놀라운 속도로 일어납니다.
 
숲의 분해 시스템은 오염이 쌓이는 속도보다 항상 빠르게 작동합니다. 악취가 날 만큼 무언가가 "쌓일" 틈이 없는 것입니다. 냄새 나는 가스가 축적되기 전에 이미 유기물은 흙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숲 바닥에서 우리가 맡는 촉촉한 흙내음, 그것은 성공적인 분해의 결과물입니다. "썩은 냄새"가 아니라 "분해가 완료된 향기"입니다.
 
다시 말해, 숲이 깨끗한 것은 더러워질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더러워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지만, 그것이 고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악취는 무언가가 더러울 때 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을 때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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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 향기가 아니라 무기입니다

 
그렇다면 분해 시스템만으로 숲의 상쾌함이 설명될까요? 아직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숲에서 깊이 들이마시는 그 향기, 피톤치드(Phytoncide). 피톤치트의 'Phyton'은 그리스어로 '식물'을 뜻합니다. 'Cide'는 '죽이다'를 뜻하죠. 직역하면 "식물이 죽이는 것"입니다. 이름부터가 "순하다", "부드럽다"와는 거리가 멉니다.
 
피톤치드는 1937년 러시아의 생화학자 보리스 토킨(Boris P. Tokin)이 처음 명명한 물질입니다. 그는 숲에서 나무들이 특정 휘발성 물질을 방출하며, 이 물질이 주변의 미생물을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무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천연 항생 물질인 셈입니다.
 
소나무가 송진 향을 풍기는 것, 편백나무 숲에서 특유의 청량한 향이 나는 것, 유칼립투스 숲이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 모든 것이 피톤치드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이 향기의 목적은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해충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죠. 또 곰팡이가 나무 표면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병원균이 상처 난 수피를 통해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위협이 다가와도 도망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백만 년에 걸쳐 화학적 방어 체계를 진화시켜왔습니다. 피톤치드는 바로 그 결과물이죠.
 
흥미로운 건, 나무의 방어 물질이 인간에게는 이로운 효과를 준다는 점입니다. 피톤치드에 포함된 테르펜 계열 화합물들은 인간의 호흡기에 닿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면역 세포의 활성을 높이며,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산림욕'의 과학적 근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치유받는 동안, 숲은 사실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해충과 싸우고, 곰팡이와 싸우고, 병원균과 싸우며 스스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힐링"이라고 부르는 순간, 숲의 방어 시스템은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습니다. 피톤치드는 숲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숲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의 부산물입니다.
 
숲의 향기를 "연약한 자연이 주는 순한 선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절반만 아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피톤치드는 숲이 수천 년간 진화시켜온 강력한 생존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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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스템은 따로 놀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봅시다.
 
숲의 분해 시스템(미생물, 곤충)과 방어 시스템(피톤치드)은 별개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썩히는 것"이고, 하나는 "죽이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숲 전체를 들여다보면, 이 두 시스템은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피톤치드가 해충을 억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해충에 의해 나무가 손상될 위험이 줄어듭니다. 나무가 건강하면 광합성을 통해 더 많은 유기물을 만들어냅니다. 그 유기물이 낙엽으로 떨어지면 분해자들에게 풍부한 먹이가 됩니다. 분해가 원활하게 일어나면 토양이 비옥해지고, 비옥한 토양에서 나무는 더 건강하게 자랍니다. 건강한 나무는 더 많은 피톤치드를 생산합니다.
 
하나의 고리가 다음 고리를 돌리고, 그 고리가 다시 처음 고리를 강화합니다.
 
이것이 '순환'의 진짜 의미입니다.
 
숲에는 '청소하는 날'이 따로 없습니다. 일요일마다 대청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봄가을로 특별히 정리하는 계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숲은 매 순간 청소 중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청소'라는 개념 자체가 필요 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언가가 떨어지면 즉시 분해됩니다. 위협이 다가오면 즉시 방어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흐릅니다. 고이는 것이 없으니 썩는 것도 없고, 막히는 것이 없으니 넘치는 것도 없습니다.
 
숲은 깨끗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순환하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깨끗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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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집은?

 
이쯤에서 우리 집을 둘러볼까요?
집안 어딘가에서 쿰쿰한 냄새가 날 때, 우리는 보통 "어디가 더러운 거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청소하거나, 방향제를 뿌려 냄새를 덮습니다. 냄새가 사라지면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숲의 원리를 떠올려보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은 "더럽다"는 신호가 아니라 "순환이 멈췄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배수구에서 냄새가 나는 건 배수구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무언가가 배수구 안에서 고여 있기 때문입니다. 냉장고에서 냄새가 나는 건 단순히 음식이 상해서가 아니라, 공기 순환이 막혀 냄새 분자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축적되기 때문입니다. 신발장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건 신발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습기가 빠져나갈 통로 없이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움"을 치우는 것과 "흐름"을 회복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화학 방향제로 냄새를 덮는 것은 고인 물 위에 뚜껑을 덮는 것과 비슷합니다. 겉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물은 여전히 고여 있고, 뚜껑 아래에서 상황은 점점 나빠집니다. 향기로운 냄새와 악취가 섞여 더 이상한 냄새가 되기도 합니다.
숲은 냄새를 덮지 않습니다. 냄새가 날 이유 자체를 없앱니다.
분해 시스템이 유기물을 즉시 처리하고, 방어 시스템이 유해균의 번식을 억제합니다. 모든 것이 흐르고, 순환하고,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래서 숲에는 방향제가 필요 없습니다. 숲 자체가 하나의 정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집도 숲처럼 작동한다면 어떨까요?
냄새가 나면 덮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고여 있는지 찾아보는 것. 더러운 곳을 치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왜 더러워졌는지, 어디서 흐름이 막혔는지를 살피는 것. 결과를 청소하는 대신, 과정을 돌보는 것.
그렇게 할 때 청소는 "치워야 할 일"에서 "흐름을 돌보는 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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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는 왜 늘 좋은 향이 날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우리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숲이 특별히 깨끗한 장소여서가 아닙니다. 숲은 더러워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체, 배설물, 썩어가는 낙엽, 무너진 나무... 도시의 어떤 쓰레기장보다 더 많은 유기물이 매일 쏟아집니다.
 
그런데도 숲은 늘 상쾌합니다.
비결은 간단합니다. 숲은 멈추지 않습니다.
 
무언가가 떨어지면 즉시 분해됩니다. 위협이 오면 즉시 방어합니다. 모든 것이 고이지 않고 흐릅니다. 순환이 계속되는 한, 악취가 쌓일 틈이 없습니다. 청소가 필요한 순간이 오지 않습니다.
 
피톤치드의 어원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식물이 죽이는 것." 숲은 무언가를 죽임으로써 전체를 살립니다. 해충을 억제함으로써 나무를 살리고, 병원균을 막음으로써 생태계를 살립니다. 분해자들은 죽은 것을 먹어치움으로써 산 것을 위한 자리를 만듭니다.
 
숲의 깨끗함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흐르는 상태"입니다.
 
깨끗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상태가 아니라 흐름입니다.
 
우리는 숲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면 한번 생각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지금 이 집에서 무엇이 흐르고 있고, 무엇이 고여 있는지.
 

 
From Forest, For Future
The Cycle of Nature, Our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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