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파트에 숲을 들이는 방법

‘나무를 심으면 숲이 되는가?’ 조경학에서는 나무를 심는 것과 숲을 만드는 것을 구분합니다. 숲이 되려면 나무를 심는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태학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취합니다. 나무의 존재만으로는 숲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숲을 숲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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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14, 2026
도시의 아파트에 숲을 들이는 방법
‘나무를 심으면 숲이 되는가?’
 
나무를 열 그루 심으면 숲이 될까요? 백 그루는 어떨까요? 천 그루를 심으면 그때는 숲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는 대개 숲을 나무의 집합으로 이해합니다. 충분한 수의 나무가 모여 있으면 그것을 숲이라 부르고, 그 숲에 들어가면 자연과 가까워졌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경학에서는 나무를 심는 것과 숲을 만드는 것을 구분합니다. 단순히 나무를 배열하는 것은 식재(植栽)이고, 숲이 되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태학에서도 비슷한 관점을 취합니다. 나무의 존재만으로는 숲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숲을 숲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숲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나무가 서 있다는 사실 너머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숲을 숲으로 유지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숲이라는 시스템

 
숲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쓰레기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숲 바닥에는 낙엽이 쌓이고, 가지가 떨어지고, 동물의 배설물이 있고, 죽은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상당한 양의 유기물이 축적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쓰레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모든 것이 순환하기 때문입니다.
 
낙엽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부엽토가 됩니다. 그 부엽토는 나무의 양분이 되고, 나무는 다시 잎을 틔웁니다. 쓰러진 나무는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분해되면서 수많은 생명의 서식지가 됩니다. 생태학에서는 이것을 '물질 순환(material cycle)'이라 부릅니다. 끝나는 것이 없고, 모든 종료는 새로운 시작의 조건이 됩니다.
 
숲의 두 번째 특징은 공기의 흐름입니다.
 
나무가 빽빽한 숲에서도 공기는 정체되지 않습니다. 수관(樹冠)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고, 온도 차이에 의한 대류가 발생하며, 지표면과 수관층 사이에서 공기가 순환합니다. 숲의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피톤치드 때문만이 아닙니다. 공기 자체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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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정화의 메커니즘입니다.
 
숲에서 무언가 썩을 때 악취가 쌓이지 않는 이유는 분해 과정이 완결되기 때문입니다. 미생물들이 복잡한 유기물을 단순한 물질로 분해하고, 그 과정이 끝나면 냄새도 사라집니다. 숲은 냄새를 덮지 않습니다. 냄새의 원인 자체를 분해합니다.
 
이 세 가지—순환, 흐름, 정화—가 숲을 숲으로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나무는 이 시스템의 구성 요소이지, 시스템 자체가 아닙니다. 나무 없이 이 시스템이 작동할 수는 없지만, 나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이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관리되지 않는 가로수 길, 시멘트로 뒤덮인 화단의 나무들, 밀폐된 실내의 관엽식물. 나무는 있지만 숲의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숲의 본질은 객체(나무)가 아니라 작동 방식(시스템)입니다.
 

아파트의 구조적 가능성

 
여기서 한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습니다.
 
숲의 본질이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공간은 꼭 나무가 있는 곳이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숲의 시스템을 다른 공간에 적용할 수 있다면, 그 공간도 일종의 '숲'으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도시의 아파트를 생각해봅니다.
 
콘크리트 구조물, 인공 조명, 기계식 환기. 숲과는 정반대의 환경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아파트에는 창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공기가 드나들 수 있는 통로입니다. 숲에서 바람이 하는 역할을 창문이 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는 배수구가 있습니다. 물이 흘러 나가는 경로입니다. 이 경로를 통해 우리가 사용한 것들은 어딘가로 향합니다. 숲에서 물질이 순환하듯, 배수구는 우리 집과 자연을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아파트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을 사용하고, 어떤 것을 흘려보낼지. 그 선택에 따라 순환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막히기도 합니다.
 
물론 아파트가 숲과 동일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비현실적인 낭만이겠지요. 하지만 숲의 원리를 차용하여 공간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가능합니다. 완전한 숲이 아니더라도, 숲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파트를 숲으로 만든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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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기를 흐르게 한다

 
숲에서 공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이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도시 생활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주거 공간은 단열과 기밀성을 중시합니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 외부 공기의 유입을 최소화하고, 냉난방된 공기를 가두어둡니다. 그 결과 공기는 정체됩니다.
 
정체된 공기는 여러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고,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축적되며, 습도 조절이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공기청정기를 돌리고, 제습기를 가동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기를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숲의 방식은 단순합니다. 공기가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을 만들면 됩니다.
 
건축학에서는 이것을 '맞통풍(cross ventilation)'이라 부릅니다.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개구부를 열면 압력 차이에 의해 공기가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한쪽 창문만 열면 공기의 움직임이 미미하지만, 반대편에 또 하나의 출구가 있으면 흐름이 생깁니다.
 
실천은 간단합니다. 하루에 10분, 창문 두 곳을 여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저녁에 귀가해서.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짧게, 맑은 날에는 조금 더 길게. 중요한 것은 공기가 '흐르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공간의 질은 달라집니다. 일주일 정도 지속하면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공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의 느낌. 흐르는 공기와 멈춰 있는 공기는 명확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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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덮지 않고 분해한다

 
숲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유기물이 썩어가는 과정에서 냄새가 나지만, 그 냄새가 축적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이것은 분해 과정이 완결되기 때문입니다. 미생물들이 복잡한 분자 구조를 단순한 물질로 분해하고, 그 과정이 끝나면 냄새를 유발하는 물질 자체가 사라집니다.
 
숲은 냄새를 '덮지' 않습니다. '분해'합니다.
 
도시의 가정에서는 반대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배수구에서 냄새가 나면 방향제를 뿌립니다. 라벤더, 시트러스, 우드 향. 한 냄새 위에 다른 냄새를 덮습니다.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향이 옅어지면 냄새는 다시 올라옵니다.
 
여기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냄새는 결과입니다. 배수구에 유기물이 쌓이고, 세균이 번식하고, 그 과정에서 냄새가 발생합니다. 결과를 감추는 것과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접근입니다. 전자는 반복을 요구하고, 후자는 해결을 가져옵니다.
 
숲의 방식을 따른다면, 냄새가 날 때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배수구 안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 어디서 세균이 번식하고 있는지. 그것을 제거하면 냄새는 자연히 사라집니다. 향으로 덮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청소 방법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고방식의 문제입니다. 결과에 대응할 것인가, 과정에 개입할 것인가. 숲은 언제나 과정에 개입합니다. 그래서 숲에는 악취가 쌓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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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쓴 것이 돌아가게 한다

 
앞서 숲에는 쓰레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숲에서는 모든 것이 순환 체계 안에 있습니다. 낙엽은 흙이 되고, 흙은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다시 잎을 틔웁니다. 어떤 것도 순환 바깥으로 이탈하지 않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쓰레기'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가정은 다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것들은 사용 후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배수구로 흘러가고, 하수관을 타고, 처리 시설을 거쳐, 결국 강과 바다로 향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숲의 낙엽처럼 순환 체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물질들은 생분해됩니다. 미생물이 분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갑니다. 이런 물질들은 순환에 참여합니다. 숲의 낙엽과 같은 방식으로요.
 
하지만 어떤 물질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생물이 분해하지 못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원래 형태를 유지합니다. 이런 물질들은 순환 바깥에 머뭅니다. 강바닥에 쌓이고, 바다에 축적되고, 먹이사슬을 통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여기서 선택의 문제가 생깁니다.
 
배수구로 흘려보내는 것이 순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순환을 막는 것인지. 우리가 사용하는 세제, 청소용품, 세면용품. 그것들이 자연의 체계 안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아니면 체계 바깥에 남아 있을 것인지.
 
숲의 원리를 따른다면, 쓴 것이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배수구로 흘러간 것이 강에 도달해도, 바다에 닿아도 괜찮아야 합니다. 그것이 순환입니다. 그것이 숲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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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으로서의 공간

 
지금까지 3가지 원리를 살펴봤습니다.
 
공기를 흐르게 하는 것, 덮지 않고 분해하는 것, 쓴 것이 돌아가게 하는 것. 이것은 숲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의 핵심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이 요소들은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완벽한 물질 순환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낙엽이 흙이 되는 과정을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순환의 원리를 차용할 수는 있습니다. 공기가 흐르게 하고,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정화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 이 정도만으로도 공간이 작동하는 방식은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입니다.
 
자연주의를 시각적 스타일로 이해하면, 화분과 원목 가구와 베이지색 패브릭이 답이 됩니다. 하지만 자연주의를 작동 방식으로 이해하면, 공기의 흐름과 정화의 메커니즘과 순환의 선택이 답이 됩니다.
 
전자는 보이는 것을 바꾸고, 후자는 움직이는 것을 바꿉니다.
 
아파트를 숲으로 만든다는 것은 후자의 관점입니다. 화분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숲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것. 그 차이는 상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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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의 단계

 
이론적 이해와 실천 사이에는 간극이 있습니다.
 
원리를 안다고 해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습관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선택을 바꾸는 데는 정보가 필요합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 하면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첫 번째로, 창문을 여는 습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저녁에 귀가해서, 10분 동안 창문 두 곳을 엽니다. 맞바람이 통하도록. 이것만으로도 공기의 질은 달라집니다. 비용이 들지 않고,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의식적으로 '여는' 행위만 하면 됩니다.
 
두 번째로, 냄새에 대한 대응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냄새가 날 때 방향제를 찾는 대신, 원인을 찾습니다. 배수구를 확인하고, 쌓인 것을 제거합니다. 처음에는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제거하면 문제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수고가 줄어듭니다.
 
세 번째로, 선택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배수구로 흘려보내는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것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씩, 기회가 될 때마다. 세제를 새로 살 때, 청소용품을 교체할 때, 그때 한 번씩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숲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가뭄이 들면 순환이 느려지고, 병충해가 돌면 균형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숲은 다시 회복합니다.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게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시스템을 작동시키려는 방향성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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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재정의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나무를 심으면 숲이 되는가?
 
이제 조금 다르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는 숲의 구성 요소이지, 숲의 본질이 아닙니다. 숲의 본질은 시스템입니다. 공기가 흐르고, 물질이 분해되고, 모든 것이 순환하는 시스템.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곳이 숲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파트도 숲이 될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없어도, 화분이 없어도, 초록색이 보이지 않아도. 공기가 흐르고, 원인이 분해되고, 쓴 것이 돌아가는 공간. 그 공간은 숲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반대로, 나무가 있어도 숲이 아닐 수 있습니다.
 
공기가 멈춰 있고, 냄새가 쌓이고, 버려지는 것들이 순환하지 못하는 공간. 아무리 화분이 많아도, 그것은 숲의 이미지일 뿐 숲의 기능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습니까?
 
공기는 흐르고 있습니까?
냄새는 덮이고 있습니까, 분해되고 있습니까?
쓴 것들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공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파트를 숲으로 만드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From Forest, For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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