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산불 10개월.. 스스로 회복 중인 숲 이야기

2025년 3월 22일, 오전 11시 24분.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산 61번지에서 시작된 불씨 하나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한 세대에 걸쳐 가꿔온 과수원이 하룻밤에 사라졌고, 선산을 지키던 소나무들이 한꺼번에 검게 그을렸습니다. 그로부터 10개월. 검게 그을린 땅 위에서,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는데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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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06, 2026
경북 의성 산불 10개월.. 스스로 회복 중인 숲 이야기
2025년 3월 22일, 오전 11시 24분.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산 61번지에서 시작된 불씨 하나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초속 5.6m/s의 강풍에 건조 주의보까지 겹친 그날, 불은 의성에서 안동으로, 청송으로, 영양으로, 영덕까지 번졌습니다. 청송에서 최대순간풍속 25.1m/s, 영덕에서 25.4m/s. 바람은 불씨를 산등성이 너머로, 계곡을 건너, 내륙에서 동해가 보이는 곳까지 밀어 올렸습니다.
149시간의 사투 끝에 진화된 불이 남긴 것. 약 99,490헥타르—서울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산림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2000년 동해안 산불의 네 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32명이 목숨을 잃었고, 4,000여 명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재산 피해만 1조 8,300억 원. 보물로 지정된 고운사 연수전과 가운루를 포함해 국가유산 27건이 불에 탔습니다.
숫자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세대에 걸쳐 가꿔온 과수원이 하룻밤에 사라졌고, 선산을 지키던 소나무들이 한꺼번에 검게 그을렸습니다. 뉴스가 지나간 뒤에도 남아 있는 건, 그 자리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개월. 검게 그을린 땅 위에서,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는데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고운사의 선택

 
천년고찰 고운사의 사찰림 240헥타르가 전소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빈 땅을 빨리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은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운사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심지 않겠다는 선택. 숲에게 맡기겠다는 선택. 불교 종단 최초의 '자연 복원' 결정이었습니다. 인공조림 없이, 숲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백두대간수목원과 그린피스, 환경단체 연대체가 함께 모니터링에 나섰습니다. 매달, 불에 탄 땅을 찾아 기록하고, 측정하고, 관찰했습니다. 어떤 개입도 하지 않은 채로.
 
심지 않는 것이 더 용기 있는 선택일 수 있다—이 문장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린 그 순간에는 확신보다 불안이 더 컸을 겁니다. 빈 땅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숲의 힘을 믿겠다는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Midjourney. 불에 탄 숲.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Midjourney. 불에 탄 숲.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과학이 목격한 것

 
2025년 12월, 백두대간수목원이 발표한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중간보고서는 놀라운 숫자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전체 조사 구간의 76.6%에서 자연복원의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누가 심지 않았는데, 숲은 스스로 돌아오고 있었던 겁니다.
 
참나무류 맹아의 밀도가 헥타르당 평균 3,922본.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축구장 하나 크기의 땅 위에 약 550그루의 참나무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심은 것이 아닙니다. 불에 타버린 나무의 밑동에서, 죽은 줄 알았던 뿌리가 다시 줄기를 밀어 올린 겁니다.
 
이것을 '맹아 재생'이라고 부릅니다. 참나무류는 지상부가 완전히 타더라도 땅속 뿌리 체계가 살아남아 새로운 줄기를 틔워냅니다. 동시에 땅속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씨앗들—'매토종자'라고 합니다—이 화재 후 빛을 받으며 비로소 발아를 시작합니다. 숲은 이미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회복의 순서였습니다.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참싸리였습니다. 참싸리는 공기 중의 질소를 토양에 고정시키는 식물입니다. 척박해진 땅에 양분을 되돌려주는 일을 조용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참싸리가 토양을 회복시키면, 그 뒤를 이어 참나무류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먼저 온 식물이 다음 식물을 위해 길을 닦는 것.
 
자연의 순서에는 낭비가 없습니다. 누군가 회의실에 앉아 복원 계획을 짠 것이 아닙니다. 수천, 수만 년 동안 반복된 숲의 경험이 땅속에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불이라는 극단적 사건 앞에서도 그 순서가 작동한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가 확인해준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토양 침식 위험도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산불 직후인 2025년 4월에 비해, 불과 4개월 뒤인 8월에는 토양 침식 위험이 3.76배나 감소했습니다. 초본 식물들의 뿌리가 흙을 붙잡기 시작한 덕분입니다.
 
동물들도 돌아왔습니다. 조사 기간 중 포유류 17종, 조류 28종이 기록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멸종위기 1급인 수달, 멸종위기 2급인 담비와 삵, 천연기념물인 올빼미와 큰소쩍새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산불 피해가 심했던 상류 지역에서도 조류 출현 종 수가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식생이 돌아오자, 그 위에 얹혀 사는 생명들도 함께 돌아온 것입니다.
 
강릉원주대학교 생물학과 이규송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전체 면적의 80~90%는 자연 복원 방식만으로도 회복 가능하다."
 
다만, 회복의 속도는 균일하지 않았습니다. 사면 하부 계곡이나 북쪽을 향한 비탈, 원래 활엽수가 섞여 있던 숲은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능선부의 소나무 단순림이나 토양이 얕고 척박한 곳은 더딘 속도를 보였습니다. 같은 산 안에서도 숲의 과거 구성이 회복의 미래를 결정짓고 있었습니다.
 
 Midjourney. 다시 돋아나는 새싹.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Midjourney. 다시 돋아나는 새싹.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두 갈래 길

 
그렇다면 자연복원이 언제나 정답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과학계에서도 오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1996년 강원도 고성 산불 피해지를 2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결론은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숲의 외형적 회복—나무의 키, 빽빽한 정도—은 인공조림지가 더 빨랐습니다. 소나무를 심은 곳의 1년 후 생존율은 89%에 달했고, 20년 뒤 나무 높이도 평균의 85~130% 수준까지 자랐습니다. 반면 자연복원지의 신갈나무는 같은 기간 평균 키의 23~90%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 토양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기물 회복률은 자연복원지가 1.5배, 양분 회복률은 1.3배 더 높았습니다. 숲의 겉모습은 조림이 빨리 채웠지만, 숲을 지탱하는 땅의 힘은 자연이 더 잘 되살려내고 있었습니다.
 
생물다양성의 회복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류가 돌아오는 데 3년, 수서 무척추동물 9년, 곤충 14년. 포유류는 20년이 지나도 산불 이전 수준의 81~86%까지만 회복되었습니다. 숲이 숲다워지는 데에는 인간의 시간 감각과는 다른 척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더 극명한 대조가 있었습니다. 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를 3년 7개월 뒤에 방문한 기록에 따르면, 자연복원에 맡긴 구간에서는 수 미터 높이의 참나무 숲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 인공으로 묘목을 심은 구간에서는 심은 나무 대부분이 고사한 채 대나무 지지대만 남아 있었습니다. 복원을 위해 낸 임도와 작업로가 오히려 산림을 2차로 훼손한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장소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개입일 수 있다는 것. 20년의 연구가 알려주는 것은 이 정도일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빠르게 초록색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숲이 다시 숲으로 기능할 수 있는 토대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회복과 진짜 회복 사이에는 시간의 두께가 필요합니다.
 
 Midjourney. 나무를 심는 사람들.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Midjourney. 나무를 심는 사람들.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이번 산불이 남긴 또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커졌을까?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원인 중 하나는, 산에 소나무가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녹화사업 당시 소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고, 이후 밀도 관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소나무는 테르펜 같은 휘발성 물질을 많이 품고 있어 불에 잘 타고, 겨울에도 잎이 붙어 있어 수관화—나무 꼭대기 사이로 불이 번지는 현상—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침엽수의 열에너지는 활엽수의 1.4배, 연소 지속시간은 2.4배에 달합니다.
 
반면 참나무류는 다릅니다. 두꺼운 코르크층과 높은 수분 함량이 불을 막아주고, 설령 지상부가 타더라도 밑동에서 다시 자라는 맹아 재생력이 뛰어납니다. 지표화 후 고사율을 보면 소나무가 81%인 데 비해, 참나무류는 20%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참나무가 맺는 도토리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하며 숲 전체의 생태계를 지탱합니다.
 
물론 소나무에게도 고유한 가치가 있습니다. 척박하고 경사가 급한 산지에서 생존력이 뛰어나고, 송이버섯 같은 경제적 편익도 있으며, 원래 경북 지역의 자생종이기도 합니다. 소나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소나무만으로 이루어진 숲이 취약했던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숲이 단일 수종이 아닌 복합적 구성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마을이나 주요 시설 주변에는 활엽수 중심의 내화수림대를 조성하고, 숲 전체는 내화수종과 용재수종, 유실수종이 어우러진 혼합림으로 가꾸자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는 방향이 이미 그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불 이후 맹아 재생으로 돌아오는 나무 대부분이 참나무류입니다. 숲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Midjourney. 참나무 줄기.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Midjourney. 참나무 줄기.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함께 만드는 회복

 
숲이 스스로 돌아오는 동안, 사람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순환에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경북 청송에서는 '산과자연의친구'가 도토리 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2025년 12월 첫 식재를 마쳤고, 2026년 봄에 두 번째 식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방식이 독특합니다. 묘목이 아니라 도토리를 직접 땅에 심습니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자연의 시작점을 돕는 방식입니다. 종자는 문경 백두대간 하늘재 '국민의숲'에서 자연 채집했고, 현지 주민들과 60대 이상 기후행동 참여자들이 함께 손을 보탰습니다.
 
기업의 참여도 이어졌습니다. 레드캡은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2억 원을 기부하고, 안동 지역 2.48헥타르에 최대 12,400그루의 나무를 심는 사업을 2026년부터 2027년까지 진행합니다. 남부지방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소, 그리고 시민단체 생명의숲이 함께합니다.
 
한편, 이보다 앞선 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의 복원 사례는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2025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2회 UN 세계복원대회에서, 전 세계 200여 사례 중 10개 우수 사례에 선정된 것입니다. 산불 피해 복원으로는 유일한 선정이었습니다. 시민참여 거버넌스와 자생식물 공급센터, 체계적인 원형 복원 방식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손길이 한 알의 도토리로, 한 알의 도토리가 한 그루의 참나무로, 한 그루의 참나무가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순환. 사람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이 겹치는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Midjourney. 도토리를 심는 사람.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Midjourney. 도토리를 심는 사람. 2026, www.midjourney.com. AI 생성 이미지.
 

100년을 내다보는 겸손함

 
백두대간수목원 허태임 연구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숲을 푸르게 하는 데 30년, 완전한 회복에는 100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덧붙였죠.
 
"100년 후를 내다봐야 하는데, 인간이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의성의 산자락에서는 참싸리가 토양을 고르고, 참나무 맹아가 햇빛을 향해 줄기를 뻗고 있습니다. 수달이 계곡을 오가고, 올빼미가 다시 둥지를 틉니다. 누가 지시하지 않았는데, 누가 설계하지 않았는데, 숲은 자기만의 순서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4,000여 이재민이 여전히 임시주거시설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고, 2025년 10월에야 시행된 특별법의 실질적 효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잿더미 위에 돋아난 초록 새싹만으로 상처가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10개월의 기록이 알려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숲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다만 멈추지도 않습니다.
 
자연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 30년 후에야 푸르러지고, 100년 후에야 온전해지는 그 느린 순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리되 무관심하지 않고, 돕되 서두르지 않는 것. 채우려 하기보다 흐름을 따르는 것. 결과를 앞당기려 하기보다 과정을 존중하는 것.
 
의성의 숲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어쩌면 회복 그 자체가 아니라, 회복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 이미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이 작동하려면, 때로는 한 발 물러서서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오늘, 의성의 숲은 조용히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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