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게 배우는 지속성의 실체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부드러운 낙엽층은, 지난 가을부터 올해까지 미생물들이 쉼 없이 분해해 온 시간의 결과물입니다. 숲은 '분'과 '초'로 시간을 세지 않습니다. 숲의 시간 단위는 '계절'이고, 때로는 '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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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02, 2026
자연에게 배우는 지속성의 실체
도시에서 1분은 정확히 60초입니다. 지하철 환승 통로를 뛰어가는 47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23초,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180초.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계를 확인하며, 촘촘하게 쪼개진 시간 사이를 헤엄칩니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뛰고, 마감에 쫓기며 일하고, 퇴근 시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런데 숲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바라보다 보면 1분이 마치 하나의 긴 호흡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시계를 보는 횟수가 줄어들고, 어느새 "지금 몇 시지?"라는 질문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새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숲의 시간은 도시의 시계와 다른 방식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도토리 하나가 참나무가 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립니다. 바위가 부서져 한 줌의 흙이 되기까지는 수천 년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부드러운 낙엽층은, 지난 가을부터 올해까지 미생물들이 쉼 없이 분해해 온 시간의 결과물입니다. 숲은 '분'과 '초'로 시간을 세지 않습니다. 숲의 시간 단위는 '계절'이고, 때로는 '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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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겉보기에 숲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무는 서 있고, 바위는 놓여 있고, 이끼는 붙어 있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건 가끔 지나가는 새와 다람쥐 정도입니다. 도시의 속도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면, 숲은 마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영상처럼 고요해 보입니다.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숲은 단 1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땅속에서는 수억 마리의 미생물이 낙엽을 분해하고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루에 수백 리터의 물을 뿌리에서 잎 끝까지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뿌리는 1년에 몇 센티미터씩, 아주 천천히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땅속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버섯의 균사는 숲 전체를 연결하며 나무와 나무 사이에 영양분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숲의 모든 것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그 속도가 우리의 일상적인 시간 감각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릴 뿐입니다.
 
나이테를 본 적 있으신가요? 나무 단면에 새겨진 동심원들. 그 한 줄 한 줄은 1년이라는 시간의 기록입니다. 비가 많이 온 해에는 조금 넓게, 가뭄이 든 해에는 조금 좁게. 나무는 매년 단 한 줄씩, 아주 천천히 그러나 아주 단단하게 자신의 역사를 새겨왔습니다. 백 년 된 나무의 나이테에는 백 개의 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백 번의 봄과 백 번의 겨울을 견딘 기록이자, 백 년 동안 단 한 해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자연의 위대함은 ‘지속성’

 
자연의 위대함은 '속도'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가뭄에도, 어떤 혹한에도, 자기만의 리듬을 멈추지 않는 '지속성'에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지구의 생태계는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 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빙하기도 있었고, 대멸종도 있었습니다. 화산이 폭발하고, 운석이 떨어지고, 기후가 급변하는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떤 재앙은 지구상 생명의 90%를 멸종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숲은 여전히 여기 있습니다.
 
비결이 뭘까요? 숲이 특별히 '강해서'가 아닙니다. 숲은 그저 멈추지 않았습니다. 느리더라도 계속 자랐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순환했습니다. 죽은 나무는 다른 생명의 터전이 되었고, 떨어진 잎은 다음 세대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 직선이 아닌 원으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자연이 수십억 년을 버텨온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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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은 가장 삐른 변화를 보입니다.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최단 거리로 달려가는 것. 그래서 효율적이고 극적입니다. 그러나 직선에는 '다음'이 없습니다. 끝점에 도달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하지만 원은 다릅니다. 끝점이 시작점이 되고, 시작점이 다시 끝점이 되는 것. 원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원은 느리지만 영원히 계속될 수 있습니다.
 

말은 친환경, 행동은 속도전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친환경 실천을 결심할 때조차 '속도전'을 벌이곤 합니다.
 
"이번 달부터 플라스틱 완전히 끊어야지." "다음 주부터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 시작이야." "이제부터 배달 음식 절대 안 시켜."
 
결심은 언제나 단호하고, 목표는 언제나 완벽합니다. 마치 직선을 그리듯, 현재의 나에서 이상적인 나까지 최단 거리로 달려가려 합니다. SNS에서 본 누군가의 완벽한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떠올리며, 나도 당장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납니다.
 
야근하고 지친 날,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는 날, 그날따라 유독 배달 앱의 할인 알림이 많이 오는 날. 결국 한 번 주문 버튼을 누르고, 일회용 용기에 담긴 음식을 받아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 또 실패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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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목표로 삼았기에, 한 번의 예외는 곧 실패가 됩니다. 실패했다고 느끼면 의욕이 꺾이고, 의욕이 꺾이면 '에라 모르겠다' 하며 포기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의 친환경 실천은 작심삼일로 끝나곤 합니다. 그리고 다시 죄책감이 찾아옵니다. 나는 왜 이것도 못 하는 걸까. 나는 환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 걸까.
 
그런데 잠시, 숲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숲에는 완벽한 날이 없습니다. 어떤 날은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어떤 날은 햇빛이 너무 강렬합니다. 태풍이 지나가면 가지가 부러지고, 산불이 나면 숲 전체가 검게 타버리기도 합니다. 병충해에 나무들이 쓰러지고, 가뭄에 개울이 말라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숲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음 날 다시 자라기 시작합니다. 부러진 자리에서 새 가지가 나오고, 불탄 땅에서 새싹이 돋아납니다. 어제의 상처를 품은 채로,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 순환합니다.
 

느려도 괜찮다는 것

 
자연의 방식은 '단거리 전력 질주'가 아닙니다.
 
숨을 고르며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의 마라톤'입니다.
 
마라톤을 뛰어본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는 비결은 '빨리 뛰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전력 질주하면 5킬로미터도 가기 전에 지쳐 쓰러집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때로는 걷기도 하고, 물도 마시며,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는 사람이 결국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친환경 실천도 같습니다.
 
어제 배달 음식을 시켰더라도, 오늘 분리배출을 다시 꼼꼼히 했다면 당신의 순환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일회용 컵을 썼더라도, 이번 주에 텀블러를 챙겼다면 당신은 여전히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못 했더라도, 오늘 다시 시작했다면 당신의 순환은 살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느리더라도 그 방향으로 계속 흐르는 것입니다.
 
물을 생각해 봅니다. 물은 바위를 만나면 돌아갑니다. 웅덩이를 만나면 잠시 고입니다. 그러나 결국 물은 바다에 닿습니다. 직선으로 가지 않아도, 돌아가고 고이기를 반복해도, 멈추지만 않으면 결국 도달합니다. 잠시 고였다가 흐르는 것도 흐름입니다. 돌아가는 것도 나아가는 것이죠.
 

28일이라는 시간에 대하여

 
우리 제품들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28일이 걸립니다. 화학약품으로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생물이 천천히 분해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분들께서 의아했습니다. 왜 굳이 28일이나 걸리게 만들었을까? 더 빨리 분해되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생각해 보면, 28일은 '느림'이 아니라 '자연의 속도'입니다.
 
숲에서 낙엽 한 장이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걸립니다. 미생물들이 조금씩 조금씩, 자기들의 속도로 낙엽을 먹고 분해하기 때문입니다. 28일은 자연의 순환 시스템이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입니다. 미생물들이 "이건 우리가 처리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속도입니다. 조금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가장 안전한 속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림'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보통 '기다림'을 비효율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빨리 할 수 있는데 굳이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요. 하지만 어쩌면 기다림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빨리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순환되도록 기다리는 것. 당장의 결과가 아니라, 그 뒤에 오는 것들까지 생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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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순환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합니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합니다. 저녁에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립니다. 주말이면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립니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날은 이 반복이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매일 같은 일을 하고, 매주 같은 청소를 하고, 매달 같은 월급을 받아 같은 생활비를 씁니다. 특별할 것 없는, 드라마틱하지 않은, 그저 평범한 하루들의 연속.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순간은 거의 없고, 대단한 성취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반복은 순환입니다.
 
세수한 물은 하수구로 흘러가고, 정화되어 다시 강으로 갑니다. 설거지한 물도, 빨래한 물도, 샤워한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 중 일부는 재활용되어 새로운 물건이 됩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에너지가 되어 우리 몸을 움직이고, 그 에너지로 우리는 다시 일하고, 돈을 벌고, 음식을 삽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일상은 이미 거대한 순환의 일부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매일 아침 '그냥' 세수하고, 매일 저녁 '그냥' 설거지하는 그 반복들. 거창하지 않고, 드라마틱하지 않은 그 일상들. 그것이 모이고 모여서 우리 삶의 순환을 만들고, 더 나아가 자연의 순환과 연결됩니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서두르지 않는 것들이 이루는 것

 
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이룹니다."
Nature does not hurry, yet everything is accomplished.
 
서두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 해에 나이테 한 줄을 새기는 나무. 수천 년에 걸쳐 바위를 흙으로 만드는 물. 28일 동안 천천히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성분.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우리의 습관.
 
이것들은 빠르지 않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뉴스에 나오지도 않고, SNS에서 화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결국 '모든 것'을 이룹니다. 백 년 된 숲은 백 년간 서두르지 않은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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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순환은 어디쯤 흐르고 있나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잠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어제 작심했던 일을 오늘 못 해도 괜찮습니다. 지난주에 세웠던 목표에서 멀어진 것 같아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도 괜찮습니다.
 
물도 고였다가 흐릅니다.
나무도 겨울에는 성장을 멈춥니다.
숲 전체가 불타고 나서도, 다음 봄에는 다시 싹이 틉니다.
 
멈춤은 끝이 아닙니다. 멈춤은 순환의 일부입니다.
 
잠시 쉬어가는 것, 잠시 고여 있는 것, 잠시 돌아가는 것. 그것들 모두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직선으로 달려가는 것만이 전진이 아닙니다. 원을 그리며 도는 것도 전진입니다.
 
다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마세요.
 
내일, 혹은 모레, 혹은 다음 주에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의 순환은 계속됩니다. 느리더라도, 서툴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되는 한 그것은 순환입니다.
 
당신의 순환은 지금 어디쯤 흐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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