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숲에는 쓰레기가 없다. 인간이 만들었을 뿐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이렇게 쏟아지는 것들이 있는데, 왜 숲은 쓰레기로 뒤덮이지 않을까요? 우리 집 앞 골목에 낙엽이 쌓이면 며칠 안에 누군가 치워야 합니다. 그런데 숲에서는 아무도 치우지 않는데 쓰레기가 되지 않습니다.
Dec 29, 2025
늦가을의 어느 주말, 오랜만에 숲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붉은색, 노란색, 갈색의 낙엽들이 켜켜이 쌓여 두툼한 카펫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 밑에서 들려오는 바스락 소리.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숲에는 매년 얼마나 많은 낙엽이 떨어질까?'
온대림 기준으로 1헥타르(축구장 1.4개 정도 크기)의 숲에서 매년 약 3~5톤의 낙엽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에 죽은 나뭇가지, 쓰러진 나무, 동물들의 배설물까지 더하면 그 양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이렇게 쏟아지는 것들이 있는데, 왜 숲은 쓰레기로 뒤덮이지 않을까요? 우리 집 앞 골목에 낙엽이 쌓이면 며칠 안에 누군가 치워야 합니다. 그런데 숲에서는 아무도 치우지 않는데 쓰레기가 되지 않습니다.
숲의 완벽한 청소부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숲에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청소부들이 있었던 것.
과학자들은 이들을 '분해자(Decomposer)'라고 부릅니다. 곰팡이, 버섯, 박테리아,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들. 이들에게 떨어진 낙엽과 죽은 생명체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최고급 식사입니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 한 장의 여정을 한 번 따라가 볼까요?
낙엽이 땅에 닿으면, 곰팡이의 균사가 낙엽 표면에 조용히 자리를 잡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균사들은 낙엽의 섬유질을 조금씩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낙엽은 점점 부드러워지죠. 이제 작은 곤충들과 지렁이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낙엽을 잘게 부수고, 소화시키고, 배설합니다. 그리고 그 배설물은 또 다른 미생물들의 먹이가 됩니다.
봄이 오면, 그 낙엽은 더 이상 낙엽의 형태를 유지하지 않습니다. 검고 부드러운 흙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흙에서 새로운 풀이 돋아나고, 나무가 영양분을 빨아올리고, 가을이 되면 다시 낙엽이 떨어집니다.
낙엽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습을 바꾸었을 뿐입니다.

버려지는 것은 단 1그램도 없습니다
이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숲에는 '쓰레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자원이고, 모든 끝은 누군가에게는 시작입니다. 떨어진 나뭇가지는 곤충의 집이 됩니다. 쓰러진 나무는 수십 종의 생물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합니다. 동물의 배설물은 식물의 비료가 됩니다.
생태학에서는 이것을 '물질 순환(Nutrient Cycling)'이라고 부릅니다.
숲은 원을 그립니다
우린 직선에 익숙합니다. 만들고, 쓰고, 버립니다. 시작점이 있고 끝점이 있는 직선의 방식.
하지만 숲은 원을 그립니다. 끝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끝이 새로운 시작입니다. 낙엽의 끝은 흙의 시작이고, 흙의 끝은 나무의 시작이고, 나무의 끝은 다시 낙엽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은 수억 년 동안 단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자연에는 원래 '쓰레기'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쓰레기는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답은 명확합니다. 쓰레기는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자연의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모두 다시 자연의 시스템 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는 흙으로, 동물은 흙으로, 모든 유기물은 결국 순환의 고리 안으로 되돌아갑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것들 중에는 이 고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자연이 '소화'할 수 없는 것들. 분해자들이 먹을 수 없는 것들.
플라스틱 한 조각을 숲에 떨어뜨린다고 상상해 봅시다. 곰팡이가 다가갑니다. 하지만 분해할 수 없습니다. 박테리아가 시도합니다. 역시 불가능합니다. 500년이 지나도 그 플라스틱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바로 '쓰레기'입니다. 순환의 고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지 못하는 것.

배수구 너머의 세계
이제 우리 일상으로 돌아와 봅니다.
아침에 설거지를 합니다. 거품이 배수구로 흘러 들어갑니다. 욕실 청소를 합니다. 세정제가 물과 함께 사라집니다. 우리 눈앞에서는 깨끗해졌습니다. 접시는 반짝이고, 욕실은 빛납니다.
그런데 배수구로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하수관을 타고 흘러갑니다. 정수 시설을 거칩니다. 그리고 결국 강으로, 바다로, 때로는 땅속으로 스며듭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돌아간 그것들을, 자연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어떤 것들은 받아들여집니다. 자연이 분해할 수 있는 성분들, 미생물이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숲의 낙엽처럼 순환의 고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자연이 소화할 수 없는 것들은 그 고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강바닥에 쌓이고, 바다를 떠돌고, 생태계 안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남습니다.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없어진 것이 아닌거죠.
'깨끗함'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는 깨끗함을 '눈앞의 얼룩이 사라진 상태'로 정의해 왔습니다. 때가 지워졌으면 그 상태를 두고 ‘깨끗하다’고 말해왔죠. 하지만 숲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절반만의 깨끗함입니다.
숲에서 낙엽이 분해되는 과정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낙엽은 사라지면서 동시에 무언가가 됩니다. 사라짐이 곧 시작입니다. 낙엽이 없어진 자리에 영양분이 생기고, 그 영양분으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것이 숲이 보여주는 '완성된 깨끗함'입니다.
완성된 깨끗함은 아마도 이런 것일 겁니다. 눈앞의 얼룩을 지우는 것, 그리고 지워낸 것들이 자연의 순환 고리 안으로 안전하게 되돌아가는 것.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
마치 숲의 낙엽처럼.

직선에서 원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직선의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만들고, 쓰고, 버립니다. 시작점에서 출발해서 끝점에 도달하면 이야기는 끝납니다.
하지만 직선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끝점에 도달한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들, 배수구로 흘러간 것들. 그것들은 어딘가에 계속 쌓입니다.
숲은 수억 년 동안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의 방식. 끝이 없는 방식. 모든 것이 모습을 바꾸며 계속해서 흐르는 방식.
이 방식이 수억 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쌓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숲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직선을 원으로 바꾸는 것. 끝을 시작으로 연결하는 것.
오늘, 당신의 청소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나요?
다시 가을 숲으로 돌아갑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습니다. 이제 모든 소리가 다르게 들립니다. 쓰레기를 밟는 소리가 아닙니다. 순환의 한 장면을 밟고 있는 소리입니다.
숲은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수억 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떨어뜨리고, 분해하고, 되돌리고, 다시 자라나게 합니다.
오늘 아침 당신이 씻어 내린 것들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요? 그것들은 숲의 낙엽처럼 자연의 품 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천천히, 함께, 그 답을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From Forest, For Future
The Cycle of Nature, Our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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