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도 인터넷을 쓴다? ‘Wood Wide Web’ 이야기
늘 숲은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숲은 결코 ‘조용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발밑에서는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만 소리가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뿐이죠.
Jan 19, 2026
늘 숲은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시의 소음을 벗어나 나무 사이를 걸으면,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함을 느꼈으니까요. 바람 소리, 새소리, 낙엽 밟는 소리. 그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숲은 결코 ‘조용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발밑에서는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만 소리가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뿐이죠.
발밑에 펼쳐진 거대한 네트워크
The Wood Wide Web
1990년대, 캐나다의 산림생태학자 수잔 시마드 박사는 숲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늘에 가려져 햇빛을 거의 받지 못하는 어린 나무들이, 이론적으로는 광합성을 충분히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던 겁니다. 광합성은 나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데, 그 방법이 차단된 상황에서도 어린 나무들은 시들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다는 뜻이었죠.
그녀는 끈질긴 추적 끝에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나무들의 뿌리 아래에는 균류가 만들어낸 거대한 네트워크가 존재했습니다.

균근(mycorrhiza)이라고 불리는 이 구조는 나무 뿌리와 균류가 서로 얽혀 만들어낸 공생의 산물입니다. 균류는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균사를 뻗어 토양 곳곳을 연결하고, 나무는 그 연결망을 통해 이웃 나무들과 물질을 주고받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지하 네트워크에 친숙한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바로 'Wood Wide Web', 숲의 월드와이드웹이라고요.
이름이 재미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그보다 훨씬 경이롭습니다.
숲 바닥의 흙 한 티스푼을 손에 올려놓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작은 흙덩이 안에는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균사가 뒤엉켜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는 실들이 나무와 나무를, 뿌리와 뿌리를 연결하고 있는 거죠. 하나의 숲에 존재하는 균사를 모두 이으면 지구를 여러 바퀴 감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나무들은 탄소, 질소, 인, 물은 물론이고 화학적 신호까지 주고받습니다. 마치 우리가 인터넷으로 정보와 파일을 주고받듯, 나무들도 균사라는 케이블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교환하고 있었던 겁니다.
단순한 물물교환이 아닙니다. 숲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어미 나무의 돌봄
수잔 시마드 박사의 연구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발견은 '어미 나무(Mother Tree)'의 존재였습니다.
숲에서 오래 살아온 큰 나무들은 수백 개의 다른 나무들과 균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거대한 나무들은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주변의 어린 나무들에게 영양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늘진 곳에서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묘목들, 스스로 광합성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려운 연약한 나무들에게 탄소를 전달하고 있었죠.
한 연구에 따르면, 어미 나무는 연간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탄소의 최대 40퍼센트까지 주변 나무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합니다. 자신이 만든 에너지의 거의 절반을 다른 나무들의 생존을 위해 내어놓는 셈입니다.
더 놀라운 건 어미 나무가 자신의 '친족'을 알아본다는 사실입니다.
실험에 따르면, 어미 나무는 유전적으로 가까운 묘목에게 더 많은 영양분을 보냅니다. 마치 자신의 자식을 알아보고 더 많이 챙기는 것처럼요. 과학자들은 이것을 '친족 인식(kin recognition)'이라고 부릅니다. 나무에게도 가족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뜻이죠.
그렇다고 다른 나무들을 외면하는 건 아닙니다. 숲 전체의 어린 나무들에게 골고루 자원을 나누어주되, 자기 후손에게는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겁니다. 마치 이웃집 아이들도 챙기지만 자기 자식은 조금 더 살피는 부모의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어미 나무가 생을 마감할 때 일어나는 일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죽어가는 나무는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남은 탄소와 영양분을 네트워크를 통해 주변 나무들에게 전달합니다. 마치 유산을 물려주듯, 자신의 자원을 숲에 되돌려놓는 겁니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죽음의 탄소 펄스(death carbon pulse)'라고 부릅니다. 나무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숲이라는 공동체로 흘러들어가는 또 하나의 순환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연을 '적자생존'의 렌즈로 바라봐 왔습니다. 강한 개체가 살아남고, 약한 개체는 도태된다는 논리로요. 다윈의 진화론이 그렇게 해석되어 왔고, 우리는 자연을 경쟁의 공간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하지만 숲의 네트워크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연결된 것이 함께 살아간다고요.

숲이 위험을 알리는 방법
Wood Wide Web의 역할은 영양분 공유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숲의 경고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어떤 나무가 해충의 공격을 받거나 병에 걸리면, 그 나무는 화학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이 신호는 균근 네트워크를 타고 주변 나무들에게 빠르게 전달됩니다. 신호를 받은 나무들은 해충이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방어 물질을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이웃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문단속을 하는 것처럼요.
실제로 과학자들이 여러 차례 실험을 해봤습니다. 한 나무에 해충을 놓으면, 균근으로 연결된 주변 나무들의 잎에서 방어 화학물질 농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어떤 실험에서는 공격받은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까지 신호가 전달되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네트워크가 인위적으로 끊어진 나무들은 해충이 직접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숲의 회복력, 그러니까 산불이나 병충해 같은 재난을 겪고도 다시 일어서는 힘은 개별 나무의 강인함에서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연결에서 왔습니다. 서로 정보를 나누고, 자원을 공유하고, 위험을 함께 대비하는 네트워크의 힘이었죠.
흥미로운 점이 또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는 같은 종의 나무들끼리만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작나무와 전나무처럼 전혀 다른 종의 나무들도 균근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실제로 자원을 주고받습니다. 계절에 따라 햇빛을 많이 받는 나무가 그렇지 못한 나무에게 탄소를 보내주기도 합니다. 여름에 잎이 무성한 자작나무가 상록수인 전나무에게 탄소를 보내고, 겨울에는 반대로 전나무가 잎을 떨군 자작나무에게 탄소를 보내주는 식이죠.
종이 다르다고 경쟁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숲은 협력의 공간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연결에 대하여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숲을 볼 때 우리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독립된 개체로 인식합니다. 저 나무는 크고, 이 나무는 작고, 저기 있는 나무는 시들어가고 있다고요. 각각의 나무가 혼자서 뿌리를 내리고, 혼자서 햇빛을 받아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발밑을 들여다보면, 그 모든 나무들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빙산의 일각이었던 거죠.
이건 단지 숲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잠시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봅니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배수구로 흘려보낸 물은 어디로 갈까요. 하수관을 타고, 처리장을 거쳐, 어딘가의 강으로, 바다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사용한 물건들은 폐기된 후에 땅으로, 공기 중으로, 다시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우리 눈에는 그냥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 하나하나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따라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숲의 나무들이 균근을 통해 연결되어 있듯, 우리의 일상도 보이지 않는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연결을 의식하지 못할 뿐이죠. 내가 오늘 내보낸 것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것이 어떤 곳에 닿는지, 우리는 대부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Wood Wide Web이 알려주는 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완전히 고립된 존재는 없다는 것. 내가 한 선택이 어딘가에 닿는다는 것. 그리고 그 연결을 의식할 때, 우리의 행동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것.

혼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미 나무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늘진 곳의 어린 나무는 혼자서는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광합성만으로는 생존이 어렵죠. 교과서대로라면 그 나무는 도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살아갑니다.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나무들로부터 필요한 것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나무가 충분히 자라서 햇빛을 받게 되면, 이번에는 자신이 다른 나무에게 나누어주겠죠.
받을 때가 있고, 줄 때가 있습니다. 숲은 그렇게 돌아갑니다.
숲의 논리는 '혼자서 완벽해야 한다'가 아닙니다. '연결되어 있으면 된다'입니다.
이 메시지가 묘하게 위안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완벽한 선택을 해야 하고, 부족함 없이 살아가야 하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요.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숲의 나무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부족할 때는 받고, 여유로울 때는 나누고, 위험할 때는 함께 대비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도 살아가고, 다른 존재들과 연결됨으로써 부족함을 채웁니다. 그렇게 수백 년을 살아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연결되어 있으면 됩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어딘가와 이어져 있다면, 그 작은 시작도 의미가 있습니다.

발밑의 대화에 귀 기울이기
다음에 숲길을 걸을 기회가 생긴다면, 잠시 멈춰 서보세요.
위를 올려다보는 대신, 발밑을 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흙 아래에서는 수많은 균사들이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영양분이 이동하고, 신호가 전달되고, 조용한 대화가 오가고 있죠. 우리 눈에는 그저 고요한 숲으로 보이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숲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숲의 진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오늘 한 작은 선택이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고, 내가 내보낸 것들이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면. 그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잠시라도 떠올려본다면. 우리의 하루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숲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진짜 강인함은 혼자 버티는 힘이 아니라, 연결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음에 숲을 걸을 때, 발밑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대화에 귀 기울여 보세요. 나무들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From Forest, For Future
The Cycle of Nature, Our Conn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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